
"너, 뉴진스 팬이구나!"
어느 날, 친구한테서 그런 소리를 들었다. 듣고 있던 노래는 뉴진스의 attention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나는 그들의 팬이 아니었다. 단지, 그네들이 아이돌이고, 뉴스에 많이 나올 정도로 인기 있는 걸그룹이고, 또 유행하고 있는 연예인들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누가 있는지도 몰랐다.
다만 그때 노래를 듣고 있었던 이유는 MZ사이에서 인기 있는 연예인은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궁금해서였다. 그리고 여러 번 듣다 보니 취향에 맞아 그 노래를 계속 듣게 된 것이었다.
그 친구에게 그러한 사정을 설명하고, 나는 그들의 팬이 아니라고 말하자 그는 또 의뭉스럽게 답하였다.
"에이, 가수 노래 들으면 그게 다 팬이지"
그는 노래를 듣는 리스너들이 모두 그 노래 주인의 팬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였다.
나는 보통 사람들보다 노래를 많이 듣는 편이다. 집에서도 계속 노래를 틀어놓고 지내는 편이다. 장르는 불문하고 듣는다. 발라드, 트로트, 팝송, k-pop 등등 일단 좋은 곡을 들으면 저장해 두었다가 두고두고 듣는다. 그렇다면, 나는 듣고 있는 모든 노래 가수들의 팬인 것인가? 단지 노래가 좋아서 듣는 것 뿐인데? 그 친구의 논리라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느 누군가의 팬일 것이다. 노래에 일절 관심 없는 사람 또한 팬이라고 치부될 것이다.
팬이란 일반적으로 특정 단체, 인물의 지지자를 일컫는 말이다. 누군가를 인지하지 못하는 데도 그것을 지지한다거나 좋아한다 말하는 것은 이상하다.
그렇기에, 나는 뉴진스의 팬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라 칭하는 것이 좋을까?
리스너? 팔로워? 청취자?
아 그래, '대중'이다. 얼마 간의 고민 끝에 내린 적절한 단어였다.
그렇게 나는 혼란스러웠던 '팬'이라는 용어의 정의를 나만의 언어로 새로이 정리할 수 있었다.
나는 뉴진스라는 걸그룹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의 '노래'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것은 대중의 영역이다. '뉴진스'를 좋아하는 것은 팬들의 영역이다. 팬이라는 것은 노래뿐만 아니라 그 가수, 아이돌, 연예인 '그들 그 자체'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사람 대 사람으로 알아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대중이라는 것은 노래를 듣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콘텐츠'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콘텐츠의 제작자는 관심 밖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대중과 팬의 구별 정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수나 아이돌에 관하여 제각각 아는 정도는 다르다. 누군가는 이름만 알 것이고, 누군가는 가수의 스케줄이나 일상생활까지 다 꿰찰 수도 있다. 그 사람을 많이 아는 정도로 대중과 팬을 구별한다면 어떨까? 뉴스 또는 SNS를 통해 그 사람을 그럭저럭, 애매모호하게 아는 사람들은 구별이 어려워진다. 팬이라 말하기도 대중이라 말하기도 어려워진다.
좋은 기준이 떠올랐다. '돈'이다.
자신이 따르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한 적이 있다면, 그 누군가는 팬이라 마땅히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아무리 자신이 따르는 사람에 대해 잘 안다 해도 돈을 기꺼이 지불하기 힘들다면, 팬이라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중이라 부르기에 마땅하다.
이것은 정치 영역이나 여타 다른 분야를 막론하고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지지하는 사람을 위하여 그들의 콘텐츠를 기꺼이 소비할 수 있다면, 그들은 '지지자'일 것이다. '팔로워'인 것이다.
지지하는 사람을 위하여 그들의 콘텐츠를 기꺼이 소비할 수 없다면, 그들은 '대중'일 것이다. '일반인'인 것이다.
일시적인 콘텐츠를 좋아하나, 지속적인 콘텐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당연히 대중이라 부르기에 괜찮다.
정치가나 기업들이 유권자나 소비자들의 요구를 무시해도 별 타격이 없는 이유를 찾은 것 같다. 그들은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대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허상에 불과하다. 몇 만의 대중의 관심을 받고 그 중 몇 명의 지지자만 챙겨도 권력자들에게는 이득일 것이다. 대중은 돈을 쓸 줄을 모른다. 대중들에게 반감을 사더라도 돈을 자신들에게 투자해 줄 지지자 몇 명이 추가하게 되는 관심이라면 오히려 나은 상황이지.
친구의 갑작스러운 말로 시작된 고민은 꽤나 괜찮은 발견으로 나아갔다. 콘텐츠, 팔로워, 팬, 대중, 수요자 등등. 이런 것을 일상 속의 영감이라 하던가.
세상이 한 층 더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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