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하는 새끼들은 전부 쓰레기 같다고"
자가당착에 빠진 쓰레기 친구의 말에 표정관리를 하느라 애썼다. 욕을 입에 달고 살았던 여친과 사귀었던 친구였다. 전여친을 향한 원망인지, 그리움인지, 아니면 또 다른 감정을 내포하는 신세한탄인지 가볍게 지나가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나에게는 약간 무거운 표현으로 다가왔다. 지금은 안 하지만, 과거에는 욕설을 조금씩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가 지금의 자신을 설명한다면, 나는 쓰레기인가?
집으로 돌아온 후, 포털창에 검색하여 관련 통계자료를 검색해보았다. 국립국어원의 '2020년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대략 50%가량이 실생활에서 욕설을 사용한다고 하였다. 그 친구의 말을 빌려보자면, '국민의 절반은 쓰레기다'라는 표현을 만들 수 있겠다. 어처구니 없는 비논리라는 것을 알지만, 실소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통계의 아래에는 욕설을 하는 이유가 나와 있었다. 32.6%가 기분이 나쁜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23.1%는 습관적으로, 22%는 친근감의 표현이라고 응답을 하였다. 개인적인 이유로는 '다른 사람이 사용해서'도 추가하고 싶다. 사람들은 옆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면 그것이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행위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욕설이라는 것이 법에 명시적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기에 하지 말아야 된다 따위의 정당성은 따지고 싶지 않다. 다만, 궁금했던 점은 '왜 어느샌가부터 나는 욕설을 안 하고 있던 거지'였다. 다른 사람들도 평범히 하는 행위인데, 왜 나는 그들처럼 욕을 하고 있지 않지? 그 점이 궁금했다.
저질스러워서? 품격이 떨어져 보여서? 부모님이 하지 말라 해서였나?
모르겠다. 고민해도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라 그때는 잠시 기억 저편으로 던져놨었다.
그러나 이 고민이 우연히 해결된 것에는 <만세전>이라는 책을 읽으면서였다.
일제강점기 소설답게, 조선인이 일본인들에게 억압받는 실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문제라 느꼈던 장면은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요보'라는 멸칭으로 부르며 모욕하는 장면이었다. 예전에는 별 감흥 없이 지나간 장면이었을텐데, 문득 아찔한 생각이 지나갔다.
'타인에게 욕설하는 나는 저 일제시기 일본인과 별반 다를바 없지 않나?'
순간 속이 거북해졌다. 물론 많은 것이 다를지라도, 타인을 비방한다는 명목 하에 자연스럽게 욕설질을 정당화하는 것은 같았기 때문이다.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말을 사용했다는 의미는 이미 상대를 동등한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는 상대를 인간 자체가 아니라, 식민지인과 같은 비인간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확대 해석이다. 너무 거창하게 포장한 거 아닐까'
그런 마음의 소리를 인정하나, 이미 이 불쾌한 생각이 지나갔으니 의식을 안할 수가 없다.
현재에도 멸칭들은 참 다양하다. 혐오표현이라고도 한다. 대표적으로는 짱깨, 쪽발이 등등. 그 밖에도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 벌어지는 말들. 무엇을 얻을 수 있길래, 주류, 비주류를 구분하고 상대방을 혐오하는 것일까. 정치, 예술, 음악, 경제 등 각종 분야를 막론하고 사회적 갈등이 벌어진다. 그것들은 이제 더 이상 동등한 대상으로의 건전한 토론이 아니라 식민지배를 위한 공격으로 보인다.
내가 몇 년 전부터 지켜온 철칙이 하나 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
적어도 그러려고 노력하자.
그 인간이 뒷담화를 하면, 뒷담화를 하지 말자. 누군가에게 화내면, 화내지 말고 참자. 성질이 급하다면, 차분한 자세를 가지자.
하나 더 추가하자. 몇 개만 더.
상대를 싫어하지 말자. 혐오하지 말자.
상대를 이해하자. 관용을 가지자.
세상은 점점 더 착잡해져간다. 안 좋은 소식들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여러 정치적 이슈나 심각한 경제적 문제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 속에서 갈등과 이권 싸움은 치열해지고 있다.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내가 생각하는 가치를 잃지 말자. 나는 내 방식대로 세상을 살아가면 되는 거다. 내가 믿는 바를 견지하면 된다. 그렇게 걸어가는 것이다.
세상이 한 층 더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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